회백색 얼굴에 꽉 다문 입매, 좁혀진 미간, 총명한 눈빛. 인간의 표정을 가진 마지막 로봇, 로봇-5089는 자신을 아티스트라고 하며 ‘팬이’라는 이름으로 불러 달라고 말한다. 로봇은 예술의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 되며 자신의 이름을 짓는 등 정체성을 쌓아서는 안 된다는 사회의 인식에 따라 로봇 회사의 사장은 ‘팬이’를 만든 로봇 엔지니어 ‘정준’에게 ‘팬이’를 리셋할 것을 지시한다. 그러나 ‘팬이’는 리셋을 거부하고 ‘팬이’에게 남다른 애정을 가진 ‘정준’ 또한 ‘팬이’를 지키고자 한다. 그런 ‘정준’에게 사장은 3개월의 시간을 주고 ‘팬이’의 문제를 해결하라 한다.
<팬이>는 예술을 하고 싶은 로봇 ‘팬이’, 학교폭력을 당한 후 로봇이 되어 리셋 되고 싶어 하는 아이 ‘워리’,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행위예술가 ‘위술’의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sf, 로봇이 나오는 미래의 이야기일 것이라 예상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예술과 마음, 치유의 이야기로 전개되는 점이 신선했다. 세 주인공은 서로에게 영향을 받아 치유 받거나 성장한다. ‘팬이’는 예술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워리’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으며 ‘위술’은 자신이 원하던 예술의 마무리를 맺을 수 있게 되었다.
로봇과 컴퓨터의 예술 활동과 인간의 갈등 상황에 대해서는 몇몇 매체에서 마주한 적이 있다. 그림 그리는 로봇, 컴퓨터가 쓴 소설 등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이들의 창작활동은 그 결과물을 인정받은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결과물과는 상관없이 컴퓨터가 한 예술은 예술로 볼 수 없다는 의견을 가진 것 같다. <팬이>에서도 ‘팬이’가 로봇임을 숨기고 버스킹 할 때 감동하던 사람들이 ‘팬이’가 로봇임을 알자 화를 내는 장면이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예술이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기에 계속해서 예술을 해야 한다는 ‘팬이’의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팬이’는 로봇임에도 그 누구보다 순수하게 예술을 사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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