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 작가 손현주의 청소년 베스트셀러 『가짜 모범생』 두 번째 이야기! “아빠의 그 기대가 제 심장을 갉아 먹는지도 몰라요.”
청소년 베스트셀러 『가짜 모범생』으로 부모의 기대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이 시대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대변한 손현주 작가가 『가짜 모범생 2 : 심장 갉아 먹는 아이』를 출간했다. 『가짜 모범생 2 : 심장 갉아 먹는 아이』는 자신에게 헌신하는 아빠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의대 입시를 준비하던 ‘효주’가 ‘피움학교’라는 정체 불명의 세계로 이동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자신을 감시하는 부모님 때문에 자기 방 방문조차 마음대로 닫지 못하는 같은 반 시윤, 성적이 안 좋다는 이유로 엄마에게 ‘괴물’이라는 소리를 듣는 은찬, 명문대를 가야 한다는 압박에 삼수를 하고 있는 삼수 오빠와 함께 각자의 고민으로부터 진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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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역사학을, 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다. 2008년 국제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엄마의 알바』로 등단했고 2009년 문학사상에 단편소설 『당신의 남자』로 신인상을 받았다. 2010년 평사리문학대상을 수상하였으며, 제1회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다. 작품으로는 『불량 가족 레시피』 『소년, 황금버스를 타다』 『헤라클레스를 훔치다』 『도로나 이별 사무실』 『빡빡머리 앤』(공저) 등이 있다.
목차
가짜 모범생
『가짜 모범생 2』 창작 노트
책속으로
나는 그때 다섯 살 무렵이었다. 아빠와 나는 소꿉놀이를 하듯이 의사 놀이를 즐겨 했다. 아빠는 나의 환자였다. “아 해보세요.” 아빠는 얌전히 앉아 입을 벌렸다. 나는 아빠의 입안을 눈으로 살핀 후 체온계를 이마에 댔다. 사람의 손이 닿으면 빨간불이 번쩍거리는 비접촉성 체온계였다. 아빠가 옷을 걷어 올리면 빨간색 하트 그림이 가운데 박혀 있는 청진기를 가슴에 댔다. “숨을 내쉬어 보세요.” 나는 청진기를 아빠의 가슴에 대고 들리지 않는 심장 박동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쿵, 쿵, 쿵, 쿵, 쿵. “심장은 아주 튼튼하세요. 대신 목이 좀 부으셨떠요.” 발음도 명확하지 않은 어린 의사 선생님은 진찰을 마친 후 처방을 내렸다. 그리고 작은 초콜릿 알맹이가 들어 있는 약을 처방해 주었다. 어린 의사의 처방을 받은 후 아빠는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노효주 선생님은 아주 훌륭한 의사가 되실 거예요.” 나는 그 말뜻도 제대로 모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미소는 가끔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 p.7-8
안나 가이드가 교문 앞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내 손에 들린 모래시계를 보자 안심한 표정이었다. “이제부터 이곳을 소개할게. 이곳은 어른과 아이들로 나뉘어 있어. 너희들은 이 구역에 있는 피움학교에서 지내게 돼. 피움학교 안에 기숙사가 있거든. 어른들은 저 언덕 너머에 있는 피움센터에서 지내. 피움 세계를 움직이는 절대자가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나도 자세히는 몰라. 나 역시 얼굴도 본 적이 없어. 여기 시스템은 먼저 온 사람들이 나중에 온 사람들에게 설명해 주면서 순환되는 구조야.” 안나 가이드의 이야기가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았지만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학교는 차차 소개하기로 하고, 일단 네 손에 든 모래시계는 여기서 사용할 시계야. 이 시계는 물리적 시간이 아닌 마음의 시간을 모래가 떨어지는 속도로 보여줄 거야.” “마음 시계요?” 나는 시계를 위아래로 흔들어 보았다. 이상한 건 모래 입자가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왜 모래가 안 떨어지죠?” “이 모래시계는 마음이 움직일 때만 모래가 떨어지게 되어 있어. 마음의 에너지가 채워질 때 움직이는 시계야. 이 모래 입자가 아래로 다 떨어질 때쯤 넌 이곳을 벗어나 저 벽을 넘어갈 수 있어. 그러니까 이 시계가 여길 나갈 수 있는 시간을 알려주는 거지.” --- p.22-23
기숙사에서는 늦은 밤까지 깨어 있을 필요가 없다. 이곳은 시험도 성적도 없는 세계였다. 초조하고 긴장되는 시험 기간이 없어 그 점이 좋았다. 이곳에서는 아이들을 줄 세우지 않았다. ‘옆집에 있는 누구는 전교 1등이더라’라며 위협을 하는 어른은 없었다. 물론 학원이나 과외도 없다. 1등이라는 신기루를 따라다닐 필요가 없어 피로하지 않았다. 또한 두 시간 이상 책상에 앉아 있으면 안 된다는 규칙도 있다. 최소한 삶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는 게 피움의 정신이다. 열등한 아이들이라고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더구나 엄마 친구 아들이나 딸도 없고 들러리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속도대로 가면 그뿐이다. --- p.77
새끼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맞은편 어미 새가 알을 깨고 나오는 새끼 새를 도와주지 않았다. 나라도 도와야 할 것 같아 손을 내밀었다. “손대지 마!” 안나 선생님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왜요? 새끼 새가 죽을힘을 다하는데 너무 안됐잖아요. 조금만 도와주면 알을 깨고 나올 수 있어요.” “새끼 새가 날갯짓을 많이 하는 데는 이유가 있어. 새끼의 날갯짓은 평생의 근육을 만들어 하늘을 날 수 있게 하거든. 만약 누군가 대신 알 깨기를 도와준다면 새끼 새는 영원히 하늘을 날 수 없어. 그래서 어미새가 놔두는 거야. 하늘을 나는 건 새끼 새의 몫이거든. 그걸 어미 새는 알아.” 새끼 새의 날갯짓이 평생의 근육을 만들어 준다는 사실에 놀랐다. 내가 알지 못하는 생태계의 법칙은 오묘한 원리가 작동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뭔가 새롭게 깨달아 갈수록 모래시계가 조금씩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았다. --- p.115-116
엄마는 잠시 내 얼굴을 빤히 보았다. “효주야, 널 보면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인지 깨닫곤 해. 넌 내 딸이야. 날 미워해도 좋아. 그냥 너만을 생각하는 결정을 하면 좋겠어. 마음에서 의심이 들거든 그 마음을 따라가 봐. 솔직한 마음을 네가 외면하면 진짜 널 찾을 수 없어. 혼란스러운 지금의 그 감정을 따뜻하게 품어줘.” “정말 그럴까.” “물론이지. 누군가 눈에 좋아 보이는 직업도 네가 불행하면 다 소용없어. 세상에는 좋은 대학을 나오고도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아. 손톱에 흙 때를 묻히면서 농사를 지어도 행복한 사람이 있고, 위험을 무릅쓰고 불구덩이에 들어가 사람을 구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는 사람도 있어.” 나는 엄마를 향해 다시 물어보았다. “엄마는 지금 행복해?” “최소한 내 선택에 후회는 없어. 만약 내가 후회한다면 그건 너한테 못 할 짓을 한 거야. 누구 때문에 못 한다는 말은 하지 마. 나 때문에 해야 한다고 생각해. 지금은 어떤 결정을 하는 게 고통스럽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진짜 너를 만나게 될 거야.” --- p.139
“은찬아, 내가 여기서 느낀 게 뭔지 아니? 결국 이 우주에서 세상을 바꾸는 건 내 마음과 생각이라는 사실이야. 이 모래시계가 지금 보여주잖아. 네 모래시계가 채워져 가는 건 마음이 단단해져 가고 있다는 뜻이야. 그 마음과 생각이 예전과 다른 너를 만들 거니까 걱정하지 마.” “누나, 내가 지금 날 믿지 못하는 거겠지?” “맞아, 네 마음을 네가 믿지 못하면 너희 엄마도 못 믿어. 우린 우주라는 자기장 안에 들어 있다고 생각해. 결국 널 바꾸는 것도 너의 힘이야. 이게 곧 증거잖아.” 내가 손에 든 모래시계를 은찬이에게 내밀며 말했다. “누나 말대로 여기 와서 조금 철이 든 느낌이야. 집으로 돌아가도 예전처럼 엄마를 두려워하지 않을 거야.” 은찬이가 한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