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과 연민이 아닌 평등으로, 다름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하여!
“특별히 잘해주지 않아도 돼. 그냥 똑같이만 대해주면 돼.”
‘박채아 오빠는 바보 병신!’
자폐장애를 가진 친오빠가 사고로 죽고 자책과 미안함을 느끼던 채아는 어느 날, 절친 우빈에게 짝사랑하는 아이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우빈을 도와주기 위해 짝사랑 상대를 찾던 채아는 그 애가 자신과 같은 반인 ‘연두’라는 걸 알게 된다.
“연두, 장애가 있어. 자폐장애. 그러니까…… 연두는 안 돼.”
다정한 문체와 시선으로 청소년들의 마음을 다독이는 민경혜 작가가 『세상의 모든 연두』를 출간했다. 『세상의 모든 연두』는 자폐장애인인 친오빠를 잃고 자책과 슬픔을 가슴에 묻은 채 지내던 채아가 같은 반 자폐장애인 ‘연두’와 얽히며 성장해 가는 이야기를 담은 청소년소설이다. 소설 속 자폐장애인을 향한 차별적인 시선과 은근한 괴롭힘을 묵인하는 사람들의 무심함을 날카로운 관점으로 꼬집으며 우리가 ‘다름’을 어떤 태도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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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푸르름이 시작되는 이른 봄날,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는 청소년 소설 『커넥트』, 『1930’s 경성 무지개』, 『꽃과 나비』, 어린이 성장 동화 『눈물 쏙 매운 떡볶이』, 『새싹이 돋는 시간』 등이 있다.
“마음을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내 마음을 담은 문장이 당신의 마음에 닿아, 기억 속에 잠시 머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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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채아 오빠, 박채준은 바보 병신.’ 오빠를 바보라고 놀리는 말, 또 병신이라고 욕하는 말은 채아가 어려서부터 이골이 나도록 들은 말이다. “우리 오빠, 바보 아니야! 우리 오빤 장애가 있는 거야!” 처음엔 채아도 엄마처럼 오빠를 향한 ‘바보’ 소리를 들으면 화가 났다. 그래서 엄마에게 배운 대로 상대에게 악을 쓰며 항변하곤 했다. 장애를 놀리면 안 되는 거라고, 장애를 얕잡아 부르지 말아 달라고. 하지만 이내 지쳐버렸다. 자신을 놀리는 ‘바보 병신’ 소리에도 그저 눈만 끔뻑거리고, 심지어는 ‘박채준은 바보 병신’이라는 그 말을 아무렇지 않게 고스란히 따라 하는 오빠가 정말 ‘바보 병신’ 같았으니까. 그런 오빠를 보며 낄낄거리는 아이들에게 맞서 더는 “우리 오빠는 ‘바보 병신’이 아니야!”라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오빠를 ‘바보 병신’이 아니라고 우기면, 어쩐지 채아가 진짜 ‘바보 병신’이 되어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엄마는 오빠가 죽고 없는 지금도 여전히 ‘바보 병신’이라는 말에 예민하게 군다. 세상 흔한 그 말에 이제는 그만 무뎌질 만도 한데, 엄마는 여전히 날카롭게 날이 서 있다. 하지만 엄마가 아무리 날을 세운다 한들, 그 날카로움은 세상을 향할 수 없다. 그저 엄마의 가슴을 후벼팔 뿐이다. --- pp.7-8
‘우빈이 첫눈에 반한 아이, 내가 종일 찾아다닌 아이가 소연두라니…….’ 채아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학교를 샅샅이 뒤지고 다녔으면서 채아는 같은 반, 바로 건너편 앞에 앉아 있는 연두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 사실이 어쩐지 섬뜩했다. ‘뭐야? 내가 어떻게 연두를 못 알아본 거지? 설마 연두를 지워버린 거야?’ 채아는 연두를 자신의 시선 밖으로 밀어낸 것이었다. 연두가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던 것이 아니라, 실은 채아가 연두를 지워버린 셈이다. 눈길을 주고 싶지 않은 아이로, 그냥 없는 아이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사람들이 오빠를 밀어낸 것처럼. 세상이 오빠를 지워버린 것처럼. 채아는 자신이 연두를 까맣게 지워버렸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엄마를 그토록 서럽게 만든 세상의 사람들이, 결국은 자신이었다는 것에. 자신이 그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에. --- pp.28-29
엄마는 끝내 다시 천천히 기운을 차렸다. 엄마는 어떻게 죽을까에 대한 고민을 미뤄두고 나고 자란 땅에서 어떻게든 다시 살아내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그렇게 엄마는 살아내기로 마음먹었는데, 오빠가 죽어버렸다. 영영 우리 곁을 떠나버렸다. ‘오빠는 어떻게 죽을까를 미리 고민했을까? 오빠만의 세상에서 오빠에게 죽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채아는 입안에 까슬하게 와 닿는 현미빵을 꼭꼭 씹었다. 고소함이 천천히 입안에 번진다. 빵을 베어 물던 오빠의 천진난만한 웃음이 떠오른다. 엄마의 등을 감싸고 있는 저 따뜻한 햇볕에 오빠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오빠가 그곳에서는 남들의 날 선 눈빛이 아닌 따뜻한 시선 속에 머물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죽음을 고민하지 않고, 덤덤히 삶을 살아내게 하는 시선 속에 머물렀으면……. 그곳에서는 오빠다움이 부디 당당했으면……. --- p.60
“연두 엄마가 나한테 했던 첫마디는 ‘미안해요’였어.” “…….” “‘미안해요. 우리 애는 장애가 있어요’라고.” “…….” “그 말이 마음에 걸려. 미안하다는 말에 거리가 느껴져. 연두 엄마가 아니, 연두가 나한테 미안해하는 건 싫어. 미안할 이유도 없이 미안해하는 거. 정작 연두를 놀라게 한 건 난데, 왜 연두가 미안한 건지……. 그 미안하다는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려. 좀 기분이 안 좋아.” “장애가 있는 게 왜 미안한 일인지 모르겠다는 거지?” “그게 미안할 일은 아니잖아.” “글쎄……. 미안할 일이 아닌데, 미안한 일이야. 미안해서는 안 되는 일인데, 미안한 일이 되어버린 거지. 그냥 그런 일로 만들어 버린 것 같아. 세상이, 사람들이……. 우빈아, 우리 엄마는 아마 ‘안녕하세요’라는 말보다 ‘죄송합니다, 미안해요’ 이 말을 더 많이 하고 산 것 같아. 우리 엄마는 오빠랑 엘리베이터만 타도 오빠를 숨기면서 미안해했어, 같이 탄 사람들에게. 오빠에게 잔뜩 경계하는 시선을 보내는 건 그 사람들이었는데……. 누가 나를 기분 나쁘게 쳐다보고, 마치 범죄자 취급하듯이 쳐다보면 억울한 건 나 아냐? 그런 시선을 던진 그들이 미안해해야 하는 게 맞잖아, 안 그래? 그런데 그 사람들은 늘 당당해. 장애인은, 그것도 자폐장애인은 그런 시선을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하나 봐. 버젓이 엄마가 옆에 있어도 말이야. 그들이 그런 시선을 견뎌야 하는 엄마에게 미안해야 하는 건데, 미안한 건 늘 엄마였어. 웃기지?” --- pp.130-131
“으이그. 소연두, 넌 만날 뭐가 그렇게 좋냐?” “응! 좋아! 참 좋아! 연두!” “그러니까 뭐가 그렇게 좋냐고? 좋을 게 하나도 없는데, 넌 뭐가 그리 좋아? 응?” 연두가 눈을 감고 숨을 잠깐 들이쉬고는 다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답했다. “좋아! 바람, 하늘! 음, 음……. 채아! 연두는 좋아! 참 좋아! 다 좋아!” 바람과 하늘, 그리고 채아 역시 좋다는 연두의 대답에 채아는 울컥했다. 연두의 그 ‘좋다’라는 말이 채아의 심장을 두 손으로 꼭 쥐었다가 스르륵 놔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따뜻하면서도 뭉클했다. 채아도 연두처럼 눈을 감고 잠깐 숨을 들이마신 후 하늘을 올려다봤다. 깨끗하고 맑은 하늘이었다. 그리고 그 하늘을 닮은 연두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네. 정말 좋다. 바람도, 하늘도 그리고 연두 너도……. 나도 참 좋다.” 연두가 웃었고, 채아도 웃었다. 그렇게 둘은 연두가 바라보는 그 하늘을 향해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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