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개들의 왕』 『바람을 만드는 사람』 마윤제 작가의 신작! 동해의 항구도시에서 펼쳐지는 청춘들의 성장 소설! “우리의 승률은 언제나 형편없이 낮다. 그렇다고 우리가 실패한 것은 아니다.”
『검은 개들의 왕』과 『바람을 만드는 사람』으로 탄탄한 필력과 치밀한 구성, 흡입력 있는 이야기를 인정받은 마윤제 작가가 오랜 시간을 들여 집필한 장편소설 『8월의 태양』을 출간했다. 『8월의 태양』은 80년대 고래잡이를 업業으로 삼은 동해 항구도시 ‘강주’를 배경으로 한 청춘들의 이야기다. 방황을 이기고 한 발짝 더 나아가는 성장기의 청춘과 몇 대에 걸친 비밀스런 가족사가 운명과 맞물려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마윤제 작가는 소설의 도입부터 그만의 독특한 서사로 독자들을 압도해 정신없이 빠져들게 만드는 마력을 보여주고 있다.
청춘은 처음으로 낯선 세상에 홀로서야 하는 시기이기에 불안정하고 자주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고, 아름답다는 것을 마윤제 작가는 한 편의 소설로 보여주고 있다. 『8월의 태양』은 수많은 실패와 시행착오를 겪고 필연적으로 방황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바치는 선물과도 같은 소설이다.
상세이미지
저자소개
경상북도 봉화에서 태어났다. ‘Heaven, Mackenzie’라는 재즈바와 인테리어 사무실을 운영하다 문학동네로 등단했다. 2012년 ‘마윤제’란 필명으로 세 소년의 모험을 그린 장편소설 『검은 개들의 왕』을 발표했다. 제2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이듬해 아르코 문학상을 수상했다. 뒤이어 우연히 잡지 [GIO]에서 읽은 기사에 이끌려 3년 동안의 긴 작업 끝에 남미 최남단 파타고니아를 배경으로 전설로 전해져오는 바람의 남자 웨나를 찾아가는 한 목동의 장대한 이야기를 담은 『바람을 만드는 사람』을 출간했다. 이후 특별한 서재 출판사와 교보문고가 공동으로 주최한 특별 강연을 기반으로 『우리는 왜 책을 읽고 글을 쓰는가』를 펴냈다. 『8월의 태양』은 동해안의 한 항구도시에서 열리는 ‘뱃고놀이’ 축제를 배경으로 젊은 다섯 남녀들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세 번째 장편소설이다.
목차
1부 2부 3부 4부
에필로그 작가의 말 추천사
책속으로
우연히 황량한 해안 절벽에서 만난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윤주를 알고 나자 거짓말처럼 내 마음속에서 일렁거리던 불안이 사라졌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몰고 온 파장은 나를 숱한 번민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거기다 어머니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까지 더하자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나를 덮쳤다. 그런데 윤주를 만나면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세상이 비 그친 다음 날 새벽처럼 선명해진 것이다. 가장 큰 변화는 어머니를 향한 집착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이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나는 과도할 정도로 어머니에게 매달렸다. 어머니 표정이 밝으면 날아갈 듯 기뻤고 어머니 표정이 어두우면 하늘이 무너진 듯 절망했다. 어머니가 며칠 동안 방에 틀어박혀 슈베르트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나는 의지할 곳을 잃어버린 고아처럼 방황했다. 강태호가 나타난 뒤에 보인 어머니의 태도는 충격이었다. 그렇게 배신감과 분노에 휩싸여 있던 내가 어머니를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윤주가 내 무의식을 칭칭 동여맨 유자철선을 잘라버린 것이다. 그것은 황량한 들판을 헤매던 영혼이 온기 넘치는 안식처를 찾은 것과 같았다. --- pp.80~81
“공격!” 남항의 청년들이 북항의 대장선에 뛰어들었다. 뱃머리에 버티고 선 강태호의 주먹이 청년의 턱을 강타했다. 청년이 그대로 바다에 떨어졌다. 그러나 남항의 청년들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들은 성난 전사처럼 북항의 배로 달려들었다. 강태호는 침착했다. 그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몰려오는 청년들을 차례로 때려눕혔다. 다섯 번째 청년이 비명을 지르며 바다에 떨어지는 순간 갑자기 강한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강태호가 서 있던 받침대가 부러지는 소리였다. 강태호의 몸이 기우뚱하더니 부러진 받침대와 함께 추락했다. 관중들이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나는 보았다. 강태호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허공을 향해 손을 뻗으며 추락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분명히 보았다. 짜릿했다. 지난 1년 동안 준비해온 인고의 시간이 결실을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강태호의 빛나는 자긍심에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상흔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때 사람들이 술렁거리며 어딘가를 가리켰다. 망원경으로 내항을 들여다보던 상윤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망원경을 빼앗았다. 뱃머리가 맞붙은 대장선과 그 주변에 스무 척의 호위선이 뒤엉켜 있었다. 나는 한순간 얼어붙었다. 강태호가 갑판에 늘어뜨린 밧줄을 잡고 있었다. 그의 맨발은 거의 바다와 맞닿아 있었다. 심판이 바닷물이 닿지 않았다는 신호를 보내자 북항 주민들이 우레와 같은 함성을 질렀다. 강태호가 밧줄을 잡아당기며 뱃전으로 올라갔다. 가볍게 갑판에 올라선 그가 두 팔을 번쩍 들었다. 이 모습을 본 관중들이 큰 소리로 강태호의 이름을 외쳤다. “강태호! 강태호!”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관중의 외침이 바늘처럼 내 몸을 찔렀다. 나는 망원경을 상윤에게 넘겨주었다. 내 계획대로 하중을 견디지 못한 받침대가 부러졌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그는 죽지 않았다. 되살아난 그는 영원불멸의 전사처럼 적들을 때려눕히고 있었다. --- p.98
“넌 두려움에 졌어.” 돌아보니 한때 동양 챔피언을 지낸 관장이 술 냄새를 풍기며 서 있었다. 관장은 링사이드 옆에 놓인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서 말을 이어갔다. “복싱에선 그걸 초심자의 공포라고 해. 선수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일이지.” “초심자의 공포요?” 관장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복싱은 힘과 기술의 조합이야. 이 두 가지가 정교하게 맞물렸을 때 승자가 될 수 있어. 하지만 링에서 상대를 이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내가 가진 만큼의 힘과 기술을 상대 역시 갖고 있기 때문이지. 따라서 그게 없는 선수는 절대 상대를 이길 수 없어.” “그게 뭔가요?” “차가운 심장.” 나는 링사이드로 걸어가서 관장을 내려다보았다. 관장이 일어나서 형광등 불빛이 흥건하게 괴어 있는 링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그런데 선천적으로 차가운 심장을 가진 놈들이 있어. 태어날 때부터 간덩이가 부은 놈들이지. 오늘 네가 상대한 꼬맹이가 바로 그런 유형이지. 복싱은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면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는 운동이야. 그걸 극복하지 못하면 넌 누구와 싸워도 이길 수 없어.” 관장의 목소리는 갈라졌고 눈동자는 풀려 있었다. “넌 누굴 이기고 싶은 거냐?”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체육관에 오는 놈들은 전부 마음속에 이기고 싶은 상대를 하나씩 숨겨두고 있어. 아마 너도 그럴 거야. 세상을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야. 누구나 이기고 싶은 무언가를 가슴에 품고 살아. 그걸 이기지 못하면 어떻게 되냐고? 패자가 되는 거야. 인생의 실패자가 되는 거지.” 관장은 그렇게 말하고는 돌아서서 사무실을 향해 걸어갔다. --- pp.120~121
“구조 신호를 보냈으니 기다리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다.” 기관장은 그렇게 말한 뒤에 곧바로 바다로 뛰어들었다. 고래를 향해 나아가는 기관장의 몸짓은 부드럽고 힘이 넘쳤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위해 거친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의 몸짓이었다. 검푸른 바다에 한 줄기 하얀 선이 만들어졌다. 그 선은 점차 고래를 향해 나아갔다. 기관장이 고래의 정면에 도착했다. 잠시 고개를 든 기관장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검은 공동으로 들어갔다. 기관장을 삼킨 심연의 문이 닫혔다. 고래가 천천히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바다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잔잔해졌다. 뱃전을 감돌던 기척이 점차 멀어졌다. 희미한 기척이 끊어지는 순간 수평선 위로 고래가 몸을 비틀면서 솟구쳐 올랐다. 우린 살면서 절대 설명할 수 없는 순간과 마주할 때가 있다. 그럴 땐 침묵해야 한다. 입을 여는 순간 거짓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난 지금까지 그날의 아름다운 도약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무덤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절대 입을 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그날 내가 보고 들은 전부는 영원히 봉함될 것이었다. 고래가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바닷속으로 들어간 뒤에야 나는 힘없이 주저앉았다.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건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숭고한 자연의 비밀을 지켜본 감동의 눈물이었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세 친구가 서 있었다. 최호가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잡고 일어섰다. 우린 달빛을 품은 밤바다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 p.251
선생님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제방 아래 모래 더미에 있는 개미집을 가리켰다. 바닥에서 도톰하게 솟은 작은 구멍으로 개미들이 새카맣게 들락거리고 있었다. “저 개미들의 활동 영역은 2~3킬로미터다. 저기서 태어난 개미들은 평생 먹이를 구하고 집을 짓고 새끼를 낳고 돌보다 죽어간다. 저 개미들이 보는 세상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 아마도 이 강이 전부일 거다. 개미의 눈에 비친 강은 거대한 세계이며 동시에 우주인 셈이지. 그런데 과연 이 강이 세상 전부일까. 우리가 알듯 이 강은 세상의 극히 작은 일부다. 지금 너희들 눈에 비친 세상도 개미의 그것과 똑같다. 그렇다면 강의 길이와 넓이를 온전하게 알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제방으로 올라와야 한다. 어쩌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강의 시작과 끝을 확인할 수 있을 거다. 넌 이제 곧 어디에서 세상을 볼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저 강바닥에서 볼 것인지 아니면 높은 곳에서 볼 것인지 선택할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흐르는 강물 소리가 고요히 내 마음으로 들어왔다. 내 마음의 굴곡을 따라 흘러가던 물은 점차 빠르게 굽이치며 흘러갔다. 나는 돌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물기가 바짝 마른 돌은 무겁고 뜨거웠다. 마치 내 심장처럼 펄떡거렸다. 나는 선생님에게 배낭을 빌려 돌을 담았다. 배낭을 둘러메자 돌의 무게가 어깨를 짓눌렀다. 발이 땅속으로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선생님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온 나는 돌을 꺼내 책상에 올렸다. 옅은 검은빛이 감도는 거친 돌은 여전히 뜨거웠다. --- pp.271~272
나는 천천히 몸을 뒤집었다. 눈이 부셨다. 나는 눈을 부릅뜨고 태양을 직시했다. 지금까지 나는 모든 싸움에서 졌다. 그 패배로 인해 나의 가장 소중한 것들을 전부 잃었다. 그러나 오늘은 아니었다. 내 의지와 힘으로 가장 두려워하던 상대와 싸워 이겼다. 내 생애 최초의 승리였다. 그러나 싸움은 끝난 게 아니었다.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앞으로 수많은 류재열이 내 삶의 고비마다 나타나서 내 앞을 가로막을 것이다. 나는 갈수록 강해지는 그들을 상대로 싸워야 한다. 내 인생의 전적은 그렇게 하나둘 승과 패를 거듭하며 쌓여가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 싸움은 내가 죽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관장은 승자만이 모든 걸 소유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늘 이길 수 없다. 그렇지만 패배가 내 모든 걸 빼앗아 갈 순 없다. 우리의 승률은 언제나 형편없이 낮다. 그렇다고 우리가 실패한 것은 아니다. 패배는 승리를 위한 발판이다. 그 발판을 밟고 조금씩 더디게 올라가면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곳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