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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이
작가 김영리
ISBN 9791167030450
출간일 2022-03-07
정 가 12,500
페이지/판형  224 / 140 * 205 mm

책소개

푸른문학상 수상 작가 김영리 신작!
인간의 표정을 가진 마지막 로봇 팬이와
로봇이 되기로 한 소년의 우정과 성장 이야기!


로봇이 인간의 역할을 대신하는 미래. 인간들에게도 로봇들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중뿔난 괴짜 ‘로봇-5089’는 한 가지 난제에 부딪혔다. 로봇에게 금기시되는 예술을 꿈꾼 대가로 자발적 리셋을 택하거나, 파기될 처지에 놓인 것. 그러나 로봇-5089는 스스로에게 ‘팬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리셋을 거부한다. 한편, 학교폭력을 당해 마음의 문을 닫게 된 열 살 소년 ‘워리’는 자신을 로봇이라고 주장한다. 끈질긴 요구로 로봇 심리학자 ‘수젼’과 만난 워리의 요구는 단 하나. “리셋해주세요.”

자신을 찾기 위해 예술을 선택한 로봇과 자신을 잊기 위해 로봇이 되길 선택한 소년, 진정한 예술가가 되기 위해 고통을 느끼고 싶은 로봇과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로봇이 되기로 한 소년. 세상에 겉도는 두 ‘모난 돌’의 예측 불가 우정과 성장 스토리가 펼쳐진다!

상세이미지



저자소개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제10회 푸른문학상 미래의 작가상, 2016 청소년이 뽑은 청문상 등을 수상했다. 작품으로 판타지 소설 『시간을 담는 여자』와 청소년소설 『나는 랄라랜드로 간다』 『치타 소녀와 좀비 소년』, 동화 『표그가 달린다』 등이 있다.

목차

리셋 아니면 파기
리셋 받을 자격
고통과
이름 없는 전사
1호 팬

『팬이』 추천사

책속으로
로봇?5089, 오늘…….”
“난 로봇?5089가 아니야.”
생각지도 못한 말에, 그의 표정이 글자 ‘오?’처럼 변했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자신을 부정하는 건 위험했다. 특히나 최근 로봇?5089의 행동을 볼 때 더더욱.
곧이어 로봇 심리학자가 아인사 회장에게 은밀하게 속닥거리는 게 들렸다. 의미를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말소리가 작았다. 미간을 찌푸리고 거울 너머의 소리에 집중하던 그는 인이어를 귀에서 빼버린 뒤, 로봇?5089에게 바짝 다가가 말했다.
“넌 로봇?5089가 맞아. 내가 5,089번째로 만든 로봇이니까.”
(…)
그는 돌덩이를 삼킨 듯 무거운 마음으로 로봇?5089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널 뭐라고 불렀으면 좋겠니?”
“팬이.”
그건 모두가 바라는 답이 아니었다.
“로봇은 스스로 이름을 붙이면 안 돼.”
“내가 나한테 이름을 붙였기 때문에 리셋하려는 거야?”
“그 이상한 이름을 버리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날 리셋할 거야?”
로봇?5089는 집요했다. 이건 업그레이드나 정기 점검 같은 게 아니니까. 로봇 엔지니어는 로봇?5089로부터 등을 돌린 채 분명하게 말했다.
“오늘은 하지 않을 거야.”
로봇?5089는 말이 없었다. ‘오늘은’이란 조건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 pp.11~13

아이가 스스로를 로봇이라고 주장한 건, 아홉 살 늦가을 즈음이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부부는 학교도 휴학시키고 방법을 찾아 고심했지만, 아이는 처음부터 계속 로봇 심리학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요구할 뿐이었다.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정신과 상담도 여러 곳에서 받았지만, 그것이 역효과가 되어 그때부터 아이는 입을 꽉 닫아버렸다.
오늘에서야 남자는 아이가 지금껏 로봇 심리학자를 만나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를 알아냈다. 리셋 때문이었다. 로봇 심리학자의 결정으로 문제 로봇들이 자발적 리셋을 할지 파기를 할지 결정된다는 기사를 아이가 인터넷에서 본 게 아닐까, 남자는 추측했다.
요즘 남자는 대본도 없이 즉석에서 애드리브로 연기하는 것 같았다. 일상처럼 자연스럽게 하고 싶었지만, 아이가 남자에게 요구하는 건 아버지가 아니라 로봇 개발자였다. --- p.42

“너 이름이 ‘패니’ 맞지?”
“내 이름은 ‘팬?이’야.”
“설마 그 ‘팬’이 그 ‘팬’이야? 그 ‘펜’이 아니라?”
로봇?5089는 사고가 정지된 듯 침묵 속에서 워리를 보았다. 그러다가 일어나서 책상 위에 굴러다니는 펜으로 종이에 제 이름을 적어주었다.
Fan?이
워리는 흠 소리를 길게 냈다. 유치원 때 영어를 뗐으니 Fan이 열성 팬 할 때 그 ‘팬’인 건 알았다. 하지만 도대체 작대기 옆에 붙은 것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몹시 수상쩍은 ‘?이’였다. 워리는 손가락으로 종이를 딱 가리키며 로봇?5089에게 물었다.
“끝에 있는 이건 뭐야?”
“사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이’ 중 사전에 나온 스물아홉 번째 중 세 번째 뜻이야. 예를 들면…….”
“‘멍청이’ 할 때 그 ‘이’?”
로봇?5089는 미묘한 표정을 짓다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자 워리의 질문이 이어졌다.
“왜 이름을 ‘팬?이’로 지은 거야?”
“내 팬은 아무도 없으니까. 나라도 내 팬이 되려고.” --- pp.94~95

“난 그저 예술을 하고 싶은 것뿐인데, 왜 사람들은 모두 나에게 화를 낼까.”
로봇?5089는 주황색 지붕 위에 올라가 걸터앉아 혼잣말처럼 하소연했다. 워리는 로봇?5089를 위로하기 위해 사다리를 타고 올라왔지만, 지붕 위에 앉을 생각까진 들지 않았다. 워리는 지붕 위의 구멍을 뚫어지게 보며 사다리를 잡고 선 채 냉정하게 말했다.
“예술을 하든지 사람들의 사랑을 택하든지 하나만 선택해. 두 마리 토끼는 욕심이야.”
“누가 그래?”
“친할머니가 그랬어. 아빠한테 가장 노릇을 하든, 예술 나부랭이를 하든 하나만 하라고.”
“너희 아빠는 어떻게 했어?”
워리는 입을 다물었다. 로봇?5089는 워리의 대답을 기다리다가 결국 제가 먼저 대답했다.
“난 이미 오래전에 택했어. 근데 내가 계속 예술을 하면 난 사라져야 해. 어떤 식으로든.”
자발적 리셋이든 파기든 로봇?5089에겐 다를 바가 없었다.
워리는 위술에게 그 이야기를 하는 걸 빼먹었다. 그럼 자신이 왜 로봇?5089와 엮이게 됐는지까지 모두 이야기해야 하니까.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워리는 로봇?5089를 보았다. 이 로봇에겐 예술이 생존의 문제였다. --- pp.137~138

위술은 로봇?5089 옆에 앉아서 물었다.
“로봇인 네가 예술을 꼭 해야 하는 이유가 뭐니?”
“하고 싶으니까요.”
“그럼 해. 하고 싶으면 해야지.”
“하지만 해선 안 돼요. 계속하면 자발적 리셋 시킨대요. 아예 파기하거나. 내가 예술을 하려는 걸, 사람들이 안 좋아해요.”
도대체 이 말만 사람들에게 몇 번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로봇?5089는 고개를 숙였다.
“사람들은 내가 하는 걸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도 싫어해.”
위술의 말에 로봇?5089는 쿡쿡 웃었다. 괴짜와 불량은 세상으로부터 왕따였다. 하지만 둘은 친구였다.
--- pp.15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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