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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만드는 사람[개정보급판]
작가 마윤제
ISBN 9791167030283
출간일 2021-08-30
정 가 14,000
페이지/판형  304 / 140 * 200 mm

책소개

현실의 한계를 넘어서는 용기를 주는 소설!

2017 문학나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이달의 읽을 만한 책’에 선정되어 문학성을 인정받은 『바람을 만드는 사람』이 개정보급판으로 출간되었다. 광대한 원시의 땅 파타고니아를 배경으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한 남자의 일생을 담은 『바람을 만드는 사람』은 수많은 독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위해 경계 밖으로 나설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넣는다.

오래전 병원 대기실에서 마윤제 작가는 운명처럼 잡지 기사 한 꼭지와 사진 한 장을 만나게 되었다. 파타고니아 고원에 올라가서 양을 키우며 살아가는 목동들의 일상을 취재한 르포 중 예순여덟 살의 목동 네레오 코르소가 자신의 오두막 계단에 앉아 낡은 브라질산 권총을 닦고 있는 사진 한 장은 이 소설의 시작점이 되었다. 거친 바람이 불어오는 황량한 고원에서 홀로 살아가는 노인의 명경처럼 맑은 눈빛과 행복한 표정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소설이 출간된 지금까지도 그를 사로잡고 있다.

상세이미지



저자소개

경상북도 봉화에서 태어났다. ‘Heaven, Mackenzie’라는 재즈바와 인테리어 사무실을 운영하다 문학동네로 등단했다. 2012년 ‘마윤제’란 필명으로 세 소년의 모험을 그린 장편소설 『검은 개들의 왕』을 발표했다. 제2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이듬해 아르코 문학상을 수상했다. 뒤이어 우연히 잡지 [GIO]에서 읽은 기사에 이끌려 3년 동안의 긴 작업 끝에 남미 최남단 파타고니아를 배경으로 전설로 전해져오는 바람의 남자 웨나를 찾아가는 한 목동의 장대한 이야기를 담은 『바람을 만드는 사람』을 출간했다. 이후 특별한 서재 출판사와 교보문고가 공동으로 주최한 특별 강연을 기반으로 『우리는 왜 책을 읽고 글을 쓰는가』를 펴냈다. 『8월의 태양』은 동해안의 한 항구도시에서 열리는 ‘뱃고놀이’ 축제를 배경으로 젊은 다섯 남녀들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세 번째 장편소설이다.

목차

바람을 만드는 사람

추천사
작가의 말

책속으로
이윽고 담배꽁초를 구둣발로 짓이긴 사내가 손가락을 까닥거리자 아버지가 아이의 등을 떠밀었다. 아이가 주춤주춤 다가가자 사내가 왼손으로 아이의 머리를 움켜잡고 다른 손으로 목과 팔과 다리의 뼈를 강하게 눌렀다. 아이의 몸이 사로잡힌 물고기처럼 파닥거렸다. 마지막으로 사내는 아이의 입을 벌려 손가락으로 치아를 흔들어보고 나서야 손을 놓았다. 그런 사내를 지켜보는 아버지의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손수건을 꺼내 손을 닦은 사내가 싯누런 봉투를 내던지며 나직하게 지껄였다.
“빌어먹을 놈.”
아버지가 봉투를 집어 들고 환하게 웃으며 바를 향해 걸어갔다. 아이를 앞세운 사내가 술집을 빠져나갔다. 사내에게 떠밀려가던 아이가 선술집 문설주를 붙잡고 울음 섞인 목소리로 아버지를 불렀다. 바텐더에게 받아든 술잔을 막 입으로 가져가던 아버지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싯누런 이빨을 드러내고 손을 흔들었다. 그것이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날 이후 네레오는 두 번 다시 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이따금 바람이 심하게 불어오는 날 선술집 어두운 조명 아래 손을 흔들던 아버지가 생각났지만 몇 년 지나자 유령 같은 그 모습이 점차 흐릿해졌고 나중에는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 p.50

아리아가 거의 끝나갈 무렵 허공을 응시하던 여자의 얼굴이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노래가 끝나고 발코니를 밝힌 불이 꺼지자 새벽 거리에 무서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한 시간쯤 지났을 때 죽은 여자의 다리가 천천히 벌어졌다. 그리고 벌어진 다리 사이로 검은 형체가 꿈틀거리며 나왔다. 그것은 죽은 어미의 살을 찢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갓난아이의 머리였다. 세상 누구의 도움도 없이 아이는 제 스스로의 힘으로 어미의 몸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새벽 공기에 노출된 아이의 머리에서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마침내 어미의 몸을 완전히 빠져나온 아이가 무언가를 잡으려는 듯 손을 들었다. 꽉 움켜쥔 아이의 손에서 뚝뚝 떨어진 핏물이 실핏줄처럼 날이 밝아오는 새벽 거리를 향해 소리 없이 흘러갔다. 아이는 천천히 눈을 뜨고 오랫동안 기다려온 세상을 공허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곳은 행려병자로 거리를 떠돌던 내 엄마가 죽은 곳이고 동시에 내가 태어난 곳이에요.”
네레오는 입술을 깨물고 서 있는 아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온 슬픔이 온몸에 전해졌다. 그것은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고통이었다. 타인에게서 동질감을 발견한다는 것은 기쁨이 아니라 또 다른 고통이었다.
아나가 천천히 돌아서서 저 멀리 어둠 속에 우뚝 선 건물을 바라보며 말했다.
“난 저곳에서 많은 사람의 축복을 받으며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 p.143-144

웨나를 찾아 세상을 떠돌던 시절 네레오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 사람들이 가족들과 함께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집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을 보는 것이었다. 그 은은한 불빛이 어두운 거리에 서 있는 자신의 몸에 닿을 때마다 날카로운 칼날로 가슴 한쪽을 도려내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고 반석에 새겨진 굳은 맹세가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렸다. 그때마다 네레오는 그 고통스런 소외감과 결락이 자신이 필연적으로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원히 가질 수 없고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불빛을 지금 자신이 움켜잡고 있었다. 이제 그는 하룻밤 잠자리를 구하기 위해 남의 집 문을 두들길 필요가 없었고 장대비가 쏟아지는 들판을 처량하게 걸어갈 이유가 없었다. 짙은 눈발이 떨어지는 어두운 밤길에서 갈 곳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할 필요도 없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감독관 집으로 돌아와 루이사와 저녁 식사를 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들면 그만이었다. 마침내 네레오는 가족을 가짐으로써 평범한 일상으로 편입할 수 있었다. 그 누구도 자신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는 일상을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가우초 감독관 자릴 선뜻 내준 목장 주인인 이시도르 하인즈였다. 이시도르가 자신에게 베푼 친절과 배려가 어디서 기인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진실을 말할 수 없었다. 진실을 고백하는 순간 자신이 누리는 행복이 산산조각으로 깨어질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루이사가 그동안 세상을 떠돌아다닌 이유를 물었을 때 대답하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였다. 웨나를 찾아 세상을 떠돌아다녔다는 사실은 무덤까지 가져가야 할 비밀이었다.
--- p.195-196

아득히 먼 옛날 베링 해를 넘어 지구의 땅 끝까지 걸어왔던 사람들의 위대한 여정이 끝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의 여정은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들의 여정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절멸하는 순간까지 이어질 것이었다.
--- p.252

이제 그는 자신의 길을 선택해야 했다. 그 길은 세상 그 누구도 알려줄 수 없는 길이었다. 따라서 네레오도 역시 앞서간 자들처럼 순수한 자의지로 자신이 나아갈 길을 결정해야 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확연하게 검증된 길을 선택했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은 모든 사람이 나아간 길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새로운 길을 찾아 나아갔다. 그들이 미지의 세계에 새로운 표석을 세울 때 우리 인식의 경계가 확장되었다. 세상의 모든 경계는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었다.
--- p.252-253

바람은 공기의 흐름이었다. 그것은 세상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절대적인 명제였다. 그런데
단 한 사람 네레오 코르소는 그 불변의 명제를 믿지 않았다. 그는 웨나가 상상의 인물이 아
니라 이 고원 어딘가에 실재한다고 믿었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시시포스처럼 고원 곳곳을 헤매고 돌아다녔던 것이다.
유년 시절에 상상하는 환상은 성인이 되면서 저절로 깨어진다. 그러나 네레오는 그렇지 못했다. 유년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날 자신이 본 네레오의 행복은 거짓이고 허상이었다. 그는 무엇 때문에 전설과 신화의 인물을 좇아 소중한 시간을 탕진한 걸까. 웨나는 신이 아니었다. 따라서 황금과 권력은 물론이고 영생을 약속할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나를 찾아다니는 이유는 무엇일까. 진실한 행복을 원해서인가. 그렇다면 네레오의 생각과 판단은 잘못되었다.
진실한 행복은 경계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쌓아올린 성채 안에 있었다. 그 안에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이 있었다. 사랑하는 연인의 달콤한 입맞춤과 친구들의 다정한 위로가 있었고 가족들의 대가 없는 사랑과 헌신적인 보살핌이 있었다.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할 수 있는 성가와 축복의 기도가 있었고 육신의 허기를 채울 수 있는 온갖 음식과 포도주가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성채 안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일상의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성채 밖은 그렇지 않았다. 그곳에는 어리석은 미망에 빠진 짐승들이 무거운 사슬을 발목에 매달고 안식처를 찾아 끝없이 방황하고 있었다. 네레오는 황야의 이리처럼 그 어둡고 음습한 땅을 헤매고 다녔던 것이다. 대체 무엇이 그를 경계 밖으로 내몰았던 걸까. 그 어떤 유혹이 그를 미망의 세계로 끌고 간 걸까.
---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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