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구미호 식당』 박현숙 작가의 또 다른 이야기! “고소하고 따뜻한 버터 냄새가 나는 약속 식당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죽어서도 지키고 싶은 약속이 있었다.’ ‘설이’를 지키려 싸우다가 죽게 된 ‘채우’는 저세상에서 천 년 묵은 여우 ‘만호’와 거래를 하게 된다. 사람으로 태어날 새로운 생을 바치고, 최대 100일 동안 설이가 있는 세상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단서는 오직 설이가 가진 게 알레르기뿐, 설이를 만날 수 있을지조차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채우는 설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망설임 없이 거래에 응한다. 파와 감자가 만난 음식은 불행을 몰고 온다고 믿는 설이에게 미완성 요리 ‘파감로맨스’를 만들어주기 위해, 그리고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죽어서라도 지키기 위해. 이층집 일가족이 연기처럼 사라진 건물 일층에 ‘약속 식당’의 문을 연 채우. 과연 미스터리한 사건과 인물들 속에서 ‘설이’를 찾아낼 수 있을까? 그리고 그와의 약속을 뒤늦게나마 지킬 수 있을까?
상세이미지
저자소개
아이들과 수다 떨기를 제일 좋아하고 그다음으로 동화 쓰기를 좋아하는 어른이다.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되어 작가가 되었다. 제1회 살림어린이 문학상 대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을 받았다. 그동안 『국경을 넘는 아이들』, 『어느 날 가족이 되었습니다』, 『완벽한 세계에 입장하시겠습니까?』, 『가짜 칭찬』, 『수상한 아파트』, 『수상한 우리 반』, 『수상한 학원』, 『수상한 친구 집』, 『수상한 식당』, 『기다려』, 『수상한 편의점』, 『뻔뻔한 가족』, 『위풍당당 왕이 엄마』, 『수상한 도서관』, 『수상한 화장실』, 『수상한 운동장』, 『수상한 기차역』, 『궁금한 아파트』, 『궁금한 편의점』, 『빨간 구미호- 사라진 학교 고양이』 등 많은 책을 썼다.
목차
낡은 이층집으로 사람이 사라진 집 미완성 요리, 파감로맨스 주변 사람들 상상하기 싫은 일들 이상한 소리 골고루 이상한 사람들 저는 게를 먹으면 완전 죽어요 식중독 사건 신고 이층에 누군가 있는 거 같죠? 비밀 계단 살아 있으면 좋겠어요 고동미와 설이 그리고 황우찬 황 부장의 집착이 의심스럽다 부질없는 약속이었어요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생겼다 약속 식당
『약속 식당』 창작 노트 『약속 식당』 추천사
책속으로
“참 고집 끝내준다. 쯧쯧쯧.” 만호는 천 년 묵은 여우다. 만호는 죽은 뒤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기 위해 대기 중인 이들을 찾아가 사람이 될 가능성을 팔라고 한다. 그 사람의 새로 시작될 생을 사는 것이다. 천 명의 생을 사면 만호는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죽었다. 그리고 심판을 받고 다시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으니 대기하라는 말을 들었다. 첫날 만호가 찾아왔다.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게 되었다며? 네가 새로이 얻게 된 생을 나에게 팔지 않을래? 공짜는 아니야.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니? 나는 너에게 더 멋진 대가를 지불할 거야. 너, 전에 살던 세상에서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 있지? 내 제안을 수락만 하면 그 사람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고 그 사람이 있는 세상으로 가게 해줄게. 단, 그 사람이 죽었다면 다시 사람으로 태어났어야 거래가 가능해. 이곳의 시간은 네가 살던 곳의 시간과는 달라. 이곳의 단 며칠이 네가 살던 곳의 수십 년 또는 수백 년이 될 수도 있거든. 어때? 괜찮은 제안이지 않니?” --- p.8~9
메뉴를 적어 벽에 붙이고 물끄러미 바라봤다. 파와 감자가 사랑에 빠질 때(파감로맨스) 파감로맨스는 미완성 요리다. 죽지 않았다면 파감로맨스를 완성했을 거다. 나는 설이를 위해서 파감로맨스를 꼭 완성하고 싶었다. 나는 밖으로 나왔다. 식당 간판이 없었다. 식당 이름을 정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나는 종이에 ‘약속 식당’이라고 써서 유리문에 붙였다. ‘약속’이라는 말을 몇 번 되뇌자 울컥해졌다. --- p.20
내가 꼭 완성하고 싶었던 음식은 파감로맨스였다. 나는 파감로맨스를 완성해서 설이의 징크스를 깨주고 싶었다. 파를 만난 감자를 먹어도 절대 불행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설이는 불행해질까 봐 파가 들어간 감잣국이나 감자찌개는 절대 먹지 않았다. 감자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아이인데 말이다. 설이가 기억하는 가장 불행했던 날엔 이상하게도 감잣국을 먹거나 감자찌개를 먹었다고 했다. 설이가 보육원에 오던 그날 아침에도 감잣국을 먹었단다. 설이가 처음으로 어떤 아이에게 맞았던 날 아침에는 감자찌개를 먹었다고 했다. 설이는 그 이유가 감잣국이나 찌개에 들어간 파 때문이라고 했다. 파와 감자가 만난 음식은 자신에게 불행을 가져온다고 믿었다. “찐 감자나 구운 감자는 괜찮아. 배도 안 아프고. 그런데 파만 들어가면 배가 아프면서 불행을 몰고 와.” 설이는 이렇게 말했다. 설이 말이 사실인지 우연인지 그건 나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설이의 생각이었다. 나는 설이에게 파와 감자가 만나도 불행을 몰고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설이가 좋아하는 감자를 실컷 먹게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설이를 불행이라는 말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었다. --- p.45~46
“돈은요, 벌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올까 말까 망설여요. 돈을 벌려고 애쓰지 말고 일을 열심히 하자고 마음먹으면 돈도 오더라고요.” 시식회를 마치고 식당으로 돌아오며 왕 원장이 말했다. “나는 돈을 벌려는 게 아니에요.” 나는 무심코 말했다. 왕 원장이 무슨 생각을 하든 말든 그냥 두어도 상관없을 텐데 나도 모르게 말했다. 이상하게도 왕 원장에게 마음이 끌렸다. 만나면 만날수록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럼요?” 왕 원장이 물었다. “믿을지 어쩔지 모르겠지만, 만나야 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 식당을 하는 거예요.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그래요.” “혹시 게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 왕 원장이 식당 앞에 자동차를 세우며 물었다. 나는 놀라서 왕 원장을 바라봤다. “음식을 먹는 사람들마다 게 알레르기가 있느냐고 묻는 거 같던데요. 그래서 넘겨짚은 거예요. 맞나 보네요.” --- p.111
설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을 다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늘 부족한 거 같았다. 나만이 설이를 지켜줄 수 있는데 그 정도밖에 못 해주는 게 항상 아쉬웠었다. 그래서 죽어서도 다음 생에 태어나면 여전히 설이를 지켜주고 싶었다. ‘내가 간절했던 만큼 설이는 간절하지 않았던 건가?’ 설이도 죽고 나서 심판을 받고 다시 사람으로 태어날 가능성을 얻었을 거다. 당연히 만호가 찾아갔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동미로 살고 있는 것은, 설이가 만호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증거다. 나만큼 절실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나는 약속을 지키고 싶었는데. 그리고 내가 죽은 건 절대 설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좋아한다는 말도 꼭 하고 싶었는데.’ 왕 원장 말대로 다 부질없는 일이었다. ‘내가 만호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나는 어느 세상으로 가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갔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는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