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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숨
작가 오미경
ISBN 9791167030702
출간일 2023-01-25
정 가 14,000
페이지/판형  240 / 140*205

책소개
“처절한 삶은 때로
그것 자체로 힘이 되기도 했다.”
열악함 속에서도 배려와 아름다운 공존으로 삶을 버텨내는
제주의 어린 해녀 영등과 그 친구들의 이야기!


일제강점기 제주 하도리.
상군 해녀를 꿈꾸는 어린 영등은 바다에서 삶을 배우고,
해녀 삼촌들과 함께 울고 웃고 연대하며 살아간다.

어느 날, 야학에서 처음 배운 ‘권리, 의무, 자유’라는 단어가
어린 해녀의 가슴속에 불꽃을 일으킨다.

일제강점기 제주 하도리를 배경으로 서로 연대하며, 의지하며 거친 삶을 살아온 해녀들의 ‘아름다운 공존’을 그려낸 『푸른 숨』은 출간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빼어난 문학성을 인정받은 청소년소설이다. 책의 앞페이지에는 소설의 배경인 제주 하도리 지도를 넣어 독자들이 이야기를 보다 쉽게 이해하고 몰입할 수 있도록 했다. 소설 본문에서는 가독성을 위해 제주어를 많이 덜어냈지만, 아름다운 제주어를 살린 ‘영등의 일기’를 통해 동글동글한 오름을 닮은 제주어의 매력을 담아냈으며 책 뒷순서에 표준어 풀이를 실어 이해를 도왔다.


상세이미지



저자소개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이야기를 쓰는 작가이다. 추리문학의 세계에 새로운 도전장을 내밀고 뚜벅뚜벅 성실하게 걷고 있다. 장편동화 『안녕, 스퐁나무』로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을 받았으며, 『추리왕 강세리』, 『마지막 책을 가진 아이』, 『백산의 책』, 『나는 조선의 가수』, 『나리초등학교 스캔들』, 『아버지를 구해야 해』, 『공주의 배냇저고리』(공저), 『달려라, 바퀴』(공저) 등을 썼다.

목차

턴아웃
『턴아웃』 창작 노트

책속으로
〈백조의 호수〉 3막이다. 제나는 숨을 크게 내쉬고 나서 무대로 뛰어들어갔다. 흑조 오딜이 왕자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장면이다. 홀릴 듯한 미소를 지으라고 서 단장이 수십 번 가까이 다그쳤던 장면이었다. 토슈즈를 신은 발끝이 심상치 않았다. 뭔가 이물질이 들어 있는 것처럼 걸리적거린다. 미소를 잃지 않으려 애쓰며 푸에테 동작을 시작했다. 한쪽 다리로 중심을 잡은 채 다른 쪽 다리를 놀리며 서른두 번의 회전을 시도하는 순간이었다. 발끝이 아팠다. 유리 조각이 순식간에 엄지발가락 한 마디를 관통하더니 두 번째 마디를 푹 쑤셨다. 아프다……. 아프다……. 너무 아파 쓰러질 것 같다.

제나는 안간힘을 쓰며 객석을 내다보았다. 이천여 명의 객석이 빈틈없이 꽉 찼다. 어둠 속에서 관객들이 숨을 죽이며 자기를 쳐다보고 있다. 제나는 발가락이 아파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당장이라도 무대를 뛰쳐나가고 싶었다. 객석 가운데 두 번째 줄에 앉아 있는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딸의 갑작스러운 표정 변화를 눈치챈 걸까. 엄마의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리더니 이내 고양이같이 도도한 눈으로 제나를 응시했다. 이제 무대를 뛰쳐나갈 수도 버틸 수도 없다. 제나의 눈가에 눈물이 고여 들었다. 엄마는 눈물을 감지한 게 틀림없었다. 입술을 앙다물며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제나야, 계속 춤을 춰야 해! 엄마처럼 뛰쳐나오면 안 돼! 죽더라도 무대 위에서 죽어!
--- pp.7~8

어린 시절에는 치열하게 경쟁해야 할 대상도 이유도 없었다. 그저 발레가 좋아 열심히 연습했다. 발레스쿨 1년 차 때만 해도 소율은 제나와 친하게 지냈다. 함께 발레 공연을 보고 난 뒤 감상을 이야기할 때면 열에 들떠 두 눈을 반짝이던 소녀들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제나와 벌어지는 격차를 견딜 수 없었다. 어딜 가든 제나 이야기뿐이었다. 소율은 정말로 풀이 죽었다. 죽도록 연습하는데, 왜 자기가 제나한테 밀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연습량이 소율 자신보다 많은 학생은 없었다. 소율은 지독한 연습벌레로 유명했으니까. 소율은 타고난 자질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깨달았다. 처음으로 연습과 노력의 한계를 맛보았다. 모두 제나 때문이었다.

‘제나가 사라져버렸으면 좋겠어!’ 그런 생각을 하며 몸을 가늘게 떨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자신이 무서웠다. 그러나 발레리나 세계에서 선의의 경쟁이란 말은 가식이었다. 우열이 드러나는데 어떻게 선의가 있을 수 있겠어! 그런 식의 경쟁은 적어도 소율에게는 없었다. 최고 발레리나가 되어 무대를 장악하는 것, 그것만이 소율이 발레를 하는 목적이었다.
--- pp.41~42

“비비안, 요즘 제나와 무슨 이야기를 했니?”
비비안의 눈에 파란 불빛이 켜졌다. 불빛이 좌우로 흔들리더니 곧 안정적으로 파란빛을 내비쳤다.
“제나 님은 요즘 종종 별에 대해 물었어요.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이 지구와 얼마만큼 먼 거리에 떠 있는지 궁금해했어요.”
“별이라고?”
“네, 요즘 천문학에 부쩍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뭐, 천문학?”
“네, 천문학은 지구 대기권 너머 우주 전체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또 우주 안에 있는 다른 천체를…….”
“그만!”
수연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천문학이라면 전 남편 태영의 연구 분야였다. 태영은 제주도에 있는 천문학 연구소에서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대학교수직을 버리더니 아예 제주도로 내려가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을 연구했다. 수연은 언제나 태영이 못마땅했다. 별을 연구하는 그가 몽상가처럼 느껴졌다. 그뿐이면 다행이었으나 문제는 어릴 적부터 제나가 남편의 일에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동안 잠잠하더니 왜 하필 요즘 제나가 천문학에 또다시 관심을 갖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가 없었다.
--- pp.53~54

서 단장이 김 형사를 빤히 보며 물었다.
“그런데 오늘은 또 어쩐 일로 오셨나요? 이야기는 모두 다 한 것 같은데요?”
서 단장은 일찌감치 방어선을 그었다. 김 형사는 역시 여우 같은 여자라는 생각을 했다. 조금 뒤 김 형사가 입을 열었다.
“송라희 씨 휴대전화에 저장된 파일을 계속 조사하고 있습니다.”
서 단장이 정색을 했다.
“파일이라면 그때 이미 다 말씀드린 걸로 알고 있어요. 저는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김 형사가 느긋한 얼굴로 서 단장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좀 다른 게 발견됐습니다.”
서 단장이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김 형사는 비로소 오늘 이곳을 찾아온 용건에 대해 설명했다.
“저희 쪽에서 며칠 전에 송라희 씨 휴대전화에 저장된 파일의 출처를 알아냈습니다.”
“출처라니요?”
서 단장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김 형사는 그 모습을 살피며 다시금 말했다.
“그 파일의 출처는 단장님 컴퓨터였습니다. 때문에 바쁘신 줄 알지만 송구하게도 또 이렇게 찾아뵙게 됐습니다.”
서연조는 침묵했다. 방금 전까지 보였던 들뜬 모습은 사라지고 긴장한 낯빛을 했다.
--- p.118

서 단장이 소율을 바라보았다. 잠시 동안의 침묵 뒤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소율아, 난 네가 제나를 뛰어넘으면 좋겠어.”
소율은 무슨 말인지 와닿지 않아서 단장을 빤히 보았다. 서 단장도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소율을 바라보았다. 조금 뒤 서 단장이 특유의 매력적인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제나를 뛰어넘는다면 발레 역사에 한 획을 긋는 발레리나가 나올 거라 믿어. 그리고…… 방금 전 내가 한 말은 진심이야. 정말 그럴 수 있으면 좋겠어.”
소율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발레 역사에 한 획을 긋는 발레리나라니. 발레를 시작하며 많은 칭찬을 들은 소율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가슴을 떨리게 만드는 칭찬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 안에 칭찬만 들어 있는 게 아니었다. 그동안 서 단장은 자신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또 밤늦도록 혼자 연습실에 남아 있는 자신을 지켜보며, 제나와 제대로 경쟁했으면 했을 것이다. 소율은 용기가 났다. 제나를 영원히 이길 수 없다고 체념했는데 다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pp.137~138

공연만 보고 식당으로 바삐 달려간 엄마 아빠의 얼굴이 떠오르자 마음이 무거웠다. 자신을 열심히 지원해준 엄마 아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늘 자신의 무대 점수는 70점을 밑돌았다. 착지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게 두고두고 마음에 걸린 탓이었다. 신물이 넘어올 정도로 연습했으나 결국 실수를 하고 말았다. 서 단장의 눈빛에 신경 써서는 안 됐다. 그 때문에 무대에 집중하지 못한 자신이 너무 후회스러웠다.

‘소율아, 택시 타고 와! 내일 또 공연해야 하잖아!’ 사람들 앞에서 소율에게 택시비를 건네주며 엄마가 큰 소리로 말했다. 소율은 또다시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언제나 엄마가 부끄러웠다. 엄마는 아무리 차려입어도 후줄근했고, 공들여 드라이한 파마머리는 끝이 갈라져 부스스하기만 했다. 각종 콩쿠르에서 제나 엄마와 나란히 앉아 있는 엄마를 보면 창피해서 숨고 싶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제나 엄마와 너무나 비교됐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묘하게도 엄마 때문에 자꾸 웃음이 나왔다. 정직하게 번 돈으로 자식에게 투자하는 엄마가 멋지게 느껴졌다.
--- pp.20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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