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가족, 친구 관계가 버거울 때가 있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정해진 가족. 그들과 좋든 싫든 함께 부대끼고 살아가야만 한다. 그리고 내가 선택할 수는 있지만 의도치 않게 쉽게 금이 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하는, 내 의지만으로 만들어갈 수 없는 친구 관계. 양호문 작가는 신작『공주 패밀리』를 통해 ‘참 가족’과 ‘참 우정’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특히 감수성이 예민하고 모든 자극에 민감한 사춘기 소녀인 주인공 ‘세은’을 통해 가족, 친구 관계를 성찰하게 하고 우리 사회에 이슈가 되고 있는 분노조절장애, 장애인, 님비 현상을 살펴보게 한다.
가정 환경은 물론 학교 환경마저도 급변하자 세은이는 매사에 짜증을 부리며 자신 주변의 모든 것을 얼음으로 만들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중학생이 되었으니 설거지도, 청소도, 밥 하는 것도, 동생을 돌보는 것도 모두 네 몫이라며 다그치는 엄마, 그런 엄마에게 찰싹 붙어서 고자질이나 해대고 귀찮게 구는 동생, 돈 벌러 갔다면서 편지 한 통 없는 아빠,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은데 계속 다가오는 친구 ‘사라’,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세은’에게도 차가운 마음을 녹여줄 따듯한 바람이 솔솔 불어온다. 똑같은 세기의 비바람이라도 그 체감의 강도는 나무마다 다 다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생활 환경의 급변에서 오는 충격의 민감도가 사람마다 큰 차이를 보인다. 양호문 작가는 한 가정에 어려운 위기가 닥쳤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온 가족이 똘똘 뭉쳐서 위기를 극복하고 원상태로 회복시켜놓는 것이라고 했다. 세은이네 가족이 어려운 위기 속에서도 웃음을 찾을 수 있었던 건 바로 ‘바퀴벌레 소탕 작전’이었다. 이 작은 사건을 계기로 ‘가족이란, 공동 운명체’라는 것을 체감하고 온 가족이 똘똘 뭉쳐 문제를 해결하며 ‘참다운 가족’의 의미를 깨닫는다. 또한 처음부터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친구 ‘사라’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참다운 우정’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된다.
더불어 혐오시설이 자기 집 근처에 세워지는 걸 적극 반대하는 ‘님비(Not In My Back Yard)’ 현상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꼬집는다. 집값이 떨어진다며 특수학교 공사를 강렬하게 ‘반대’하는 집단과 특수학교를 짓게 해달라고 무릎 꿇고 ‘애원’하는 집단 간의 첨예한 갈등을 통해 우리 사회의 ‘집단 이기주의’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지금의 청소년들이 꼭 생각해봐야 할 현실의 문제들을 짚어주고 있다.
상세이미지
저자소개
1960년에 태어나 강원대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건설 회사, 철 구조물 생산 회사, 농산물 유통 회사, 서적 외판, 편의점 경영, 입시학원 강사 등 다양한 직업을 두루 거치며 삶의 경험을 쌓았다. 그러나 작가가 되어 글을 쓰는 평생의 꿈을 저버리지 못하고 문학에 끈질기게 구애하여, 마침내 중편소설 『종이비행기』로 제2회 허균문학상을 수상하며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고등학생인 아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다는 일념으로 써 내려간 『꼴찌들이 떴다!』로 제2회 블루픽션상을 받았다. 작가의 녹록지 않은 삶의 경험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이 작품은 현재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반 이상에 해당되는 이야기고, 그 시간을 지나왔거나 앞으로 지나갈 많은 이들의 이야기라는 평을 받았다. 발표한 작품으로는 중편소설 「겨울 허수아비」, 「호수와 노인」 등, 장편 동화 『가나다라 한글 수호대』, 청소년 소설 『달려라 배달 민족』, 『웰컴 마이 퓨처』, 『정의의 이름으로』, 『악마의 비타민』이 있다. 현재 가족과 함께 춘천의 소양강 변에 살며 깨어 있는 하루 중 4분의 2는 글을 쓰고, 4분의 1은 책을 읽고, 나머지 4분의 1은 산책과 사색을 하며 지내고 있다.
목차
- 바람처럼 사라진 - 마구 쏟아져라! - 외나무다리 - 적반하장 - 악마의 손 - 보라색 나팔꽃 - 놈의 출현 - 소망약국 - 방주교회 - 하나! 둘! 셋! - 배꼽 빠지던 날 - 충격 그리고 감동 - 맴돌이 춤 - 얼굴 나누기 - 평강 선화 백설 -『공주 패밀리』 창작 노트
책속으로
사춘기 소녀도 아닌데 근래 들어 신경질을 자주 부리고 짜증이 심해진 엄마였다. 아빠와 결혼을 한 이후로 직장에 다녀본 적이 없다는 엄마. 그런 엄마가 일을 하느라 피곤하기 때문이라고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충분한 설명도 않고 느닷없이 쌀쌀맞게 대하는 엄마가 많이 서운했다. --- p.9
세은이는 불편한 마음을 안고 자기 방으로 건너갔다. 크기가 코딱지만 한 방. 전에 살던 서른여덟 평 아파트의 방에 비하면 반 이상이나 줄어든 것이었다. 그런데다 가구와 짐들을 빼곡히 들여놓아 지저분한 창고나 매한가지였다. 여유 공간이 거의 없어 침대에서 창문까지 겨우 두 걸음에 불과했다. 답답해서 숨이 막혔다. --- p.9
아빠 사업이 잘 안돼서 이렇게 되었어! 아빠는 이 년쯤 있다가 돌아올 거야, 돈 많이 벌어서. 엄마도 이제 하루 종일 일을 해서 돈을 벌 거고. 그러면 다시 넓은 아파트를 사서 이사 갈 수 있어. ……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이사였기에 세은이는 아직도 정신이 얼떨떨했다. 도무지 현실 같지가 않고 마치 악몽을 꾸고 있는 기분이었다. --- p.11
대체 사우디가 어떤 곳이기에 이 년 만에 큰 아파트를 살 돈을 벌 수 있다는 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만약 아빠가 이 년 만에 그만한 돈을 못 벌면 이혼을 하겠다는 건가? 나한테도 드디어 올 것이 온 거야?” --- p.12
급하게 라면을 끓여 다시 안방으로 가지고 가자, 이번에는 반찬이 없다고 투덜거렸다. “반찬이 없잖아?” “반찬이 왜 없어? 김치도 있고, 콩자반도 있고, 멸치볶음도 있고, 많은데!”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들이야!” “얻어먹는 주제에 반찬타령은……. 먹든지 말든지 니 맘대로 해!” 소리를 버럭 질렀더니, 예은이가 얼굴을 잔뜩 구긴 채 젓가락을 들고 라면을 께적거렸다. 이래저래 보기 싫은 동생이었다. 아예 낳지를 말든지, 차라리 나를 동생으로 낳아줄 것이지! 언니로 태어나게 해준 엄마 아빠가 원망스러웠다. --- p.22
엄마가 방문을 꽝 닫았다. 그 진동에 창문이 우루루루! 떨었다. 이사를 오기 전에는 엄마와의 사이가 이렇게까지 심각해질 줄 상상조차 못했었다. 집안 분위기가 더욱 차가워져 아예 꽁꽁 얼어붙고 말았다. 집이 아니라 얼음나라였다. 마술에 의해 얼음나라로 변한 게 아니고, 가족들끼리 서로 쌀쌀맞게 대해서 그 냉기로 저절로 얼음나라가 된 것이었다. --- p.44
“그렇지 뭐. 나한테 무슨 행운이 있겠어? 중학생이 되자마자 아빠 사업이 망하고, 큰 아파트를 팔고 거지같은 소형 아파트로 이사하고, 밥 설거지 청소 빨래도 도맡고, 중학생이 되면 마음씨 착하고 예쁜 새 친구를 만나길 바랐는데 윤사라 그 끔찍한 악마의 손을 만나고…….” 꼽아 보니 모두가 행운이랑은 정반대인 불운한 것들뿐이었다. 그 불행이 자기한테 한꺼번에 닥쳤다는 사실에 몹시도 화가 났다. --- p.81
“어? 저기! 저기 있어, 엄마!” 형광등 갓 옆에 검은 물체가 붙어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엄마가 발꿈치를 들고 눈을 크게 떠서 살폈다. 곧 엄마가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 p.117
“님비요? 그게 뭐예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영어로 낫 인 마이 백 야드(Not In My Back Yard)의 준말인데, 혐오시설이 자기 집 근처에 세워지는 걸 적극 반대한다는 거야.” “혐오시설이요? 특수학교가요?” --- p.213
작은 돌멩이로 땅바닥에 낙서를 했다. 아빠 얼굴, 엄마 얼굴, 자기 얼굴, 예은이 얼굴을 그려놓고서 선을 그어 둘 둘씩 나누기도 하고, 하나와 셋으로 나누기도 하고, 각각 하나씩 나누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어떤 방법으로 나누든 한 가족을 나눈다는 것 자체가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웠다. --- p.240
“너희가 아직 어려서 큰 충격을 받을까 봐, 그동안 숨겼던 거야. 아빠가 절대 말하지 말라고 부탁을 하기도 했고.” 세은이는 입을 꾹 다문 채 묵묵히 있었다. 정말 충격이었다. 꿈에서조차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 눈앞에 벌어진 것이었다. 나를 속이다니? 엄마 아빠 모두한테 배반을 당했다는 느낌에 울분이 끓어올랐다. --- p.251
왼손을 펴서 손바닥이 아래로 향하게 한 다음, 오른손 손바닥을 펴서 손날로 왼손 손등을 가볍게 두 번 두드렸다. 이어서 왼손 주먹을 쥔 채 엄지를 세우고 오른손 손바닥을 펴서 엄지 위에서 오른쪽으로 두 번 돌렸다. 인어공주 사라한테 배운 수화였다. 엄마는 무슨 의미인지 몰라 부드럽게 웃기만 했다. ‘엄마, 고마워요! 그리고 사랑해요!’라는 의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