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쁠 때, 슬플 때, 화날 때… 나는 마음이 터져라 트로트를 불러.” “삼대째 이어진 판소리 명창 가문? 내가 택한 길은 오직 트로트뿐이야!”
한 시대를 풍미한 『춤추는 가얏고』의 작가 박재희, 트로트와 함께 화려하게 돌아오다!
『춤추는 가얏고』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작가 박재희가 이번에는 ‘트로트’라는 뜨거운 소재를 가지고 청소년소설로 독자들을 찾아왔다. 무형문화재 23호 가야금산조 이수자인 작가의 경험담이 판소리와 트로트의 접목이라는 한편의 트렌디한 소설로 태어났다. 『어쩌다, 트로트』에는 증조할아버지로부터 삼대가 이어온 판소리와 주인공 지수가 택한 트로트, 전통과 현재가 어우러져 있다.
바야흐로 트로트의 시대다. 가슴속에 있는 슬픔을 노래로 승화시키는 그 ‘깊은 맛’에 전 국민이 동화되어 트로트에 맞춰 춤을 추고, 눈물을 흘리고, 다시 웃음 짓는다. 트로트는 한국인들 특유의 ‘한’을 ‘흥’으로 승화하여 표현해내기에 이토록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어쩌다, 트로트』는 트로트의 ‘깊은 맛’을 쏙 빼닮았다. 삼대째 이어진 판소리 명창 가문에서 태어나, 가족을 등지고 떠난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를 가슴에 꽁꽁 묻어 두었던 아이가 슬픔을 직면하고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은 슬픔도 흥겨운 노래로 승화시키는 트로트의 ‘깊은 맛’을 닮아 있다.
난 트로트 부를 때 기분이 좋아. 경쾌한 노래, 슬픈 노래 다 좋아. 좀 우울할 때, 기분이 엿 같을 때 혼자 코인 노래방 가서 목이 찢어져라 트로트를 불러. 트로트는 혼자 불러도 친구들과 즐겁게 어울려 부르는 느낌이 들거든. 노래 부를 때만큼은 나는 왕따가 아니야. (63쪽, 64쪽)
아이들의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은 돈도, 명예도, 그 무엇도 아닌 바로 ‘꿈’이다. 아이들이 저마다 마음에 품고 있는 상처를 치유해주는 것도 ‘꿈’이다. 『어쩌다, 트로트』의 지수에게도 꿈이 있다. 지수는 황제에게 벼슬을 받은 국창 증조할아버지부터 하늘이 낸 소리꾼으로 불린 할아버지, 전설적 명창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판소리 성골’이지만, ‘명창의 아들’이라는 타고난 운명 대신 트로트를 자신의 길로 삼고 개척하며 나아간다. 전설적인 명창의 아들이 술집 뽕짝을 부르냐는 쓴소리를 들으면서도 흔들림 없이 자신만의 꿈을 향해 가는 지수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아이들의 가슴에도 꿈이라는 목표가 조금씩 움틀 것이다.
상세이미지
저자소개
충북 제천출생으로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와 중앙대학교를 졸업했다. 현재 무형문화재 23호 가야금 산조 최옥삼 류 이수자이다. 1989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춤추는 가얏고'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중단편소설집 『양구』, 장편소설 『더러운 사랑』, 장편동화 『대나무와 오동나무』, 어린이 정보책 『우리 음악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흥과 멋이 묻어나는 전통음악』 『단소교실』 『가야금 교본』『징을 두드리는 동안』 등이 있다.
목차
꽃분홍은 싫어 마카롱 덕분에 공포의 오디션 뽕짝이 어때서 우정 반지 응원단장 올 에이 창극인가 개그인가 보고픈 지수 고생한다 도끼 삼 형제 수오당이 뭐야? 별들의 전쟁 데스 매치
『어쩌다, 트로트』 창작 노트
책속으로
“어차피 쇼야.” 어떤 유명 가수가 말했다. 가수는 노래하는 연극배우라고, 목소리로 청중을 울리고 웃기는 희극 배우라고. ‘쇼야. 목소리로 승부하는 게임!’ 눈을 질끈 감고서 눈동자에 기운을 모은다. 눈두덩이 뜨거워질 때쯤 슬그머니 눈을 뜬다. 촉촉한 눈으로 벽에 걸린 붓글씨 족자를 바라본다. 감정을 잡는다. 꿈을 꾸는 듯, 꿈이 현실인 듯, 현실이 꿈인 듯. --- p.40
“난 트로트 부를 때 기분이 좋아. 경쾌한 노래, 슬픈 노래 다 좋아. 좀 우울할 때, 기분이 엿 같을 때 혼자 코인 노래방 가서 목이 찢어져라 트로트를 불러. 트로트는 혼자 불러도 친구들과 즐겁게 어울려 부르는 느낌이 들거든. 노래 부를 때만큼은 나는 왕따가 아니야.” “왕따……라니.” 이렇게 멋진 하지수가 자신을 왕따라고 생각하다니! 위로해줄 말, 왕따가 아니라 상남자라고 짱 박아줄 말을 고르는데 지수가 먼저 입을 연다. “왕따가 된 느낌, 넌 잘 모를 거야. 난 정말 너무 잘 알아.” --- p.64
지수는 냉큼 마이크를 받았다. 마치 오래전부터 기다렸던 것처럼 마이크를 입술에 붙이고 노래하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홀 가득 울려 퍼졌다. 노래에 따라 사람들이 같이 박수를 쳐주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 느낌이었다. 그 첫 느낌이 지금의 지수를 아사리판에 붙잡아둔 것 아닐까. “아이가 대단해. 음악 천재야, 천재. 현인 선생님이 살아서 돌아오신 것 같아.” “아이가 무슨 뽕짝이야. 동요나 부르지.” 누가 뭐라든 지수는 트로트가 좋았다. 쿵짝쿵짝 전주곡이 나오면 몸이 먼저 곡조의 파도를 탔다. 가끔 엄마를 따라서 민요를 부르기도 했지만 대부분 트로트를 불렀다. 현인 선생님 같은 유명한 트로트 가수를 꿈꾸었다. --- p.82
아빠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 결혼식도 미루고 혼인신고만 한 스무 살 여자와 백일 된 아들을 버리고 간 이기주의자. 판소리가 뭔데, 판소리 무대를 망친 것도 아니고 구경꾼이 적은 게 기분 나쁘다고 바위에서 뛰어내린 멍청이. 제자의 망가진 몸뚱이를 본 스승은 음식을 끊었고, 남편을 잃은 여자는 아이를 뺏길까 봐 숨고. (…) 아빠는 살인마다. 박은희, 이금산, 조은필, 운경, 그리고 하지수의 삶을 매장한 살인마다. 그러면 아빠를 죽인 사람은 없을까? 사람들이 판소리를 싫어하는 게 아빠를 자살로 몬 이유가 될까. 어렵다. --- p.150
“사실 그동안 저는 고민이 많았습니다. 어려서는 뭘 모르고 트로트를 불렀지만, 중학생이 되고 다양한 음악을 만난 후로는 제가 왜 어른들이 좋아하는 트로트를 부르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어린애가 무슨 트로트냐, 동요나 불러라, 건방지다, 안 어울린다……. 어릴 때부터 어른들에게 이런 말씀을 들을 때마다 고민했습니다. 왜 트로트지? 트로트를 꼭 불러야 하나? 고민했습니다만, 이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트로트를 좋아합니다. 사랑합니다. 특히 현인 선생님의 굵고도 맑은 목소리, 점잖게 노래 부르는 모습을 좋아합니다.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트로트는 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입니다. 또 트로트는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는 가장 한국적인 음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 p.163
얼씨구, 잘한다, 조오치! 여느 때 같으면 후끈 달아올랐을 소리판이다. 그러나 너무 고요하고 너무 적막하다. 그리운 마음. 하동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추임새를 못 넣게 하나 보다. 소리판 돗자리를 둘러싼 50여 명의 손님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누구 한 사람이라도 눈물 그렁하면 순식간에 소리판을 눈물판으로 만들 것이다. 다행히 미색 원피스 차림의 지수 어머니는 편안해 보인다.